12월 21일 밤,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방배동에서 술을 마시던 중, 트위터(현 X)와 신문 기사로 남태령에서 농민과 경찰 간 대치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미 시민들이 농민을 돕고 있지만 사태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고, 그날 밤 강제 진압이나 연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함께 전해졌다.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남태령으로 향했다.
현장: 차벽과 트랙터 사이에서
현장에 도착하니, 경찰 버스들이 잔뜩 모여 차벽을 이루고 트랙터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는 농민을 지지하러 나왔다가 불법 체포된 시민들을 태운 경찰차를 시민들이 둘러싸고 연행을 막고 있었고, 한편에선 사복 경찰관이 조롱 섞인 언행으로 시민들을 자극하며 갈등을 유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차벽을 피해 풀숲을 지나 집회 현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최소 천 명이 훌쩍 넘어 보이는 시민들이 농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구호를 외치며, 밤새 시민 발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한 시민이 “단지 탄핵 집회에서 멈추지 말고, 앞으로 농민·전장연·부당해고 노동자·성소수자·여성·팔레스타인까지 서로 연대해 나가자”라고 외친 대목이 가슴을 깊이 울렸다. 모두가 연대하는 순간, 그 결속에서 비롯된 강력한 에너지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2016년과 2024년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도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며칠간 고생하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양재IC 부근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다. 경찰은 곤봉 등 무기를 사용하여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체포했으며, 일부 농민은 이 과정에서 머리를 다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경찰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는 변함없었지만, 시민과 정치권이 농민과 함께했다. 결국 경찰은 트랙터 중 10대가 한남동 관저로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고, 우리들은 관저 앞에 모여 불법 계엄을 규탄하고 윤석열의 파면과 체포를 외치는 구호를 이어갔다.
승리의 연대가 남긴 울림과 우리의 숙제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그동안 농민들의 투쟁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연대가 지니는 강력한 힘 또한 몸소 깨달았다. 비단 나만의 감상이 아니었다. 이번 경험은 우리 세대의 연대 의식을 완전히 달라지게 했다. 각자 성별, 직업, 장애 유무, 성적 지향 등이 달라도, 함께 모여 목소리를 모으는 순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확실히 체감했다.
이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며, 잊어서도 안 된다. 우리 세대는 연대의 힘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되었다. 윤석열 탄핵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사회 곳곳에서 투쟁하는 다양한 이들과 연대하여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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